동아시아 중성미자 삼국지

최준석 과학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 | Posted : December 15, 2020, 19:39 | Updated : December 15, 2020, 19:39

[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러시아 핵물리학의 중심도시는 두브나(Dubna)다. 두브나는 모스크바 북쪽으로 112㎞ 떨어진, 볼가 강변에 있다. 러시아 최고의 핵물리학연구소인 합동원자핵연구소(JINR)가 이곳에 있다. 북한 핵물리학자들이 JINR에서 공부했다고도 전해진다. 2017년 9월 19일 한-중-일의 중성미자 물리학자 세 사람이 JINR에서 상을 받았다. 서울대 김수봉 교수, 중국 고에너지물리연구소의 왕이팡 박사, 그리고 일본 KEK(고에너지물리연구기구)의 니시가와 고이치로(西川 公一郎) 박사다. 이들이 받은 상은 브루노 폰테코르보 상. 중성미자 물리학자를 대상으로 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흰색 대리석 기둥과 빨간색 벽의 건물 전면이 아름다운 JINR 건물에서 빅토르 마트비프(Matveev)소장이 시상했다.


 

[러시아 두브나에 있는 JINR 건물]




브루노 폰테코르보는 러시아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물리학자다. 중성미자 연구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 합동원자핵연구소가 1995년 상을 만들었고, 입자물리학 분야의 중성미자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다.

동아시아 삼국의 물리학자 세 사람이 나란히 이 상을 받은 건 이례적이다. 이들의 공적은 거칠게 얘기하면 중성미자의 질량을 측정하는 데 한 걸음 더 내디뎠다는 거다. 중성미자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아주 작은 입자이다. 질량이 아주 작기에 ‘미자’라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가 있다. 중성미자는 질량도 모르고, 몇 종류가 있는지도 모른다. 좀 어려운 용어가 되겠지만, 중성미자의 CP(전하-패리티)대칭성이라는 게 깨져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중성미자는 다음 세대 입자물리학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걸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래서 중성미자 물리학은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하다.

중성미자 물리학의 선두는 일본이다. 일본은 미국보다 앞서 있다. 일본 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의 물리학자들은 노벨물리학상 두 개를 받은 바 있다. 2002년 노벨상은 ‘중성미자 천문학’ 시대를 열었다는 공로로 받았고, 2015년 노벨상은 ‘중성미자 진동’(neutrino oscillation)이라는 현상 확인을 평가받았다. 특히 중성미자 진동 현상은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다는 증거여서, 파문이 컸다. 기존의 입자물리학 교과서에 따르면 중성미자는 질량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교과서 내용(‘표준모형‘)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니, 충격파는 거셌다. 입자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 너머의 새로운 물리학’을 찾아 나서야 했다.


김수봉, 왕이팡, 니시가와 고이치로 세 사람이 한 일은,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두 사람이 한 일의 후속 작업이다. 중성미자 종류는 현재 최소 세 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세 종류는 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다. 중성미자 세 개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중성미자로 변한다(‘경입자 섞임’ mixing).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도쿄대학의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는, 세 개의 중성미자 중 전자중성미자가 뮤온중성미자로 바뀌는 ‘변환상수’를 측정했다. 그와 같은 해 노벨상을 받은 아서 맥도널드 교수(캐나다 퀸즈대학)는 뮤온중성미자가 타우중성미자로 바뀌는 변환상수를 측정했다. 두 노벨상 수상자가 하고 남은 연구는, 타우중성미자가 전자중성미자로 바뀌는 변환상수 측정이다. 이 측정 작업은 쉽지 않았다. 타우중성미자가 전자중성미자로 바뀌는 정도는 유달리 작았기 때문이다.

 

[중국 다야 베이 실험 시설 내부의 광센서들].





왕이팡 중국 고에너지물리연구소(IHEP) 박사가 이끄는 다야 베이(Daya Bay) 실험은 2005년 시작했다. 중국 남부의 홍콩에서 동북쪽으로 58㎞ 떨어진 광둥성 다야(大亞)만에 있는 핵 발전소들 인근에 지하실험장을 만들었다. 서울대 김수봉 교수 그룹은 왕이팡 그룹보다 1, 2년 늦게 실험을 시작했다. 과학기술부로부터 2006년 3월 연구비 116억원을 지원받아, 12개 대학의 연구자 34명이 참여하는 르노 실험(RENO, Reactor Experiment for Neutrino Oscillations, 원전중성미자실험) 그룹을 만들었다. 전남 영광의 한빛 원전 인근의 지하에 실험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공사 착수는 중국 다야 베이 실험보다 훨씬 늦었지만, ‘빨리 빨리’를 잘하는 한국인의 특장 때문인지, 검출기 설치를 중국보다 먼저 마쳤다. 르노 그룹은 2011년 11월 건설공사를 마치고, 검출기를 가동해 데이터를 얻기 시작한다는 걸 알리는 국제 세미나를 서울대에서 열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중국의 왕이팡 그룹은 “우리는 2012년 6월쯤 공사를 마무리하고, 검출기 가동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한국 그룹은 이 말을 듣고 좀 뿌듯했다.

중국의 다야 베이 실험과 한국의 르노 중성미자 실험은 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자리잡은 게 특징이다.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에서는 중성미자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또 중성미자는 입자가속기에서도 만들 수 있고, 우주에서 날아오기도 하며, 지구 깊숙한 땅속에서도 나온다.

르노 그룹은 2012년 초 원하는 ‘변환상수’ 값을 얻었다. 발표하기 전에 데이터를 보며 논문을 다듬었다. 그런데 아뿔싸, 다야 베이 실험이 예상치 못하게 3월 8일에 논문을 내놓았다. 6월이 되어야 가동한다고 했던 중국 그룹이 어떻게 데이터를 얻었단 말인가, 충격이었다. 르노 그룹은 부랴부랴 작업을 해서 다야 베이의 발표 3주 뒤에 논문을 내놓았다.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날짜를 기준으로 하면 중국 그룹보다 1주일 늦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 측은 2011년 11월 서울대에서 열린 르노 실험 워크솝에 참석했다가 충격을 받았다. 귀국해서 비상을 걸었고, 그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일부 시설 가동에 들어갔다. 검출기가 모두 8개였는데, 그중에 되는 걸 먼저 가동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얻어, 마지막으로 남은 중성미자 변환상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16년 브루노 폰테코르보 상 수상자들...왼쪽 두 번째가 김수봉 전 서울대 교수].


이로부터 5년 뒤 러시아 두브나에서 한-중-일의 경쟁 그룹 대표들은 브루노 코르보 상을 받기 위해 만났다. 이때 찍은 기념 사진이 온라인에 있어, 찾아볼 수 있었다. 수상자 세 사람과, 연구소 소장 해서 모두 네 사람이 나란히 서 있다. 사진을 보면서, 미묘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김수봉 교수의 뒤통수를 친 왕이팡 박사나, 뒤통수를 맞은 당사자나 표정이 밝지 않아 보인다. 내가 그렇게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중성미자 선진국인 일본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과 중국이 바짝 추격해 오는듯해서 마음이 약간 급해질 것 같다. 특히 중국 고에너지 물리학의 급부상에 민감해 하지 않나 싶다. 한국물리학자들이 작성한 한 보고서는 중국 다야 베이 실험의 결과를 이렇게 평가한다. “중국에서 진행된 대형 국제공동연구 중 처음으로 세계적인 성과를 거둔 실험이었다. 중국 기초과학의 수준을 여러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된다.”

중국의 중성미자 실험을 이끈 왕이팡 박사는 실적을 인정받아 중국고에너지물리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중성미자 연구자가 중국 고에너지물리학계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중성미자 연구가 세계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현재 비중이 어떤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성미자 연구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중성미자 분야에는 미스터리가 많다. 메달이 많이 남아 있다.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되고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더 성능이 좋은 장비를 구축해야 한다. 차세대 중성미자 실험으로 왕이팡의 중국 그룹은 ‘주노’(JUNO)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건설 공사에 들어갔고 2021년 데이터를 얻는 걸 목표로 한다. 왕이팡 그룹은 중국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JUNO실험의 목표는 세 개의 중성미자 가운데 어느 게 가장 무겁고, 어느 게 가장 가벼운지를 확인하는 거다.

한-중-일 삼국 중 중성미자 연구에서 가장 앞서 있는 일본은 3세대 가미오칸데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3세대 실험에는 ‘하이퍼-가미오칸데’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1세대 실험 ‘가미오칸데’와 2세대 실험 ‘슈퍼-가미오칸데’가 노벨상을 따냈고, 하이퍼-가미오칸데 실험도 노벨상을 목표로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2019년 12월 건설이 승인되었고, 2027년 데이터를 얻는 걸 목표로 한다.

‘하이퍼-가미오칸데’실험의 목표는 중성미자의 CP대칭성 붕괴 여부 확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물질-반물질 대칭 파괴다. 물질-반물질 대칭 파괴를 달리 표현하면, 우주에 왜 물질만 있고, 반물질은 없는가 하는 문제이고, 이걸 확인하는 수단 중 하나가 중성미자의 CP대칭성 붕괴 여부 확인이다.

물질은 알 것 같은데, 반물질은 무엇인가? 두 개는 전하의 부호가 서로 다르고, 나머지 성질은 똑같다. 가령, 전자는 물질이고, 양전자(Positron)는 반물질이다. 전자는 음의 전기를 띠고, 양전자는 양의 전기를 갖고 있다. 우주의 아주 이른 시기, 즉 빅뱅 직후에는 물질과 반물질이 우주에 똑같은 양으로 존재했다. 예컨대 전자와 양전자가 똑같은 숫자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주가 진화하면서 물질만 남고 반물질은 사라졌다. 이건 큰 미스터리라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한국의 르노 실험은 후속 실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김수봉 교수는 동분서주했으나, 후속실험인 르노-50실험 연구비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어쨌든 르노 실험 연구비는 작년으로 끊겼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르노 실험은 한국의 중성미자 물리학이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했음을 알린 바 있다. 어렵게 마련한 120억원의 연구비로, 한국 고에너지 물리학사에서 돌출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의 지원을 받지 못해 바쁜 걸음에 제동이 걸렸다. 연구에 참여했던 중성미자 연구자는 흩어졌고, 장비는 영광의 지하에서 곧 녹슬기 시작할 것이다.

입자가속기가 없는 나라에서 중성미자 연구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고에너지물리학을 키울 수 있는 수단이다. 중성미자 연구는 분야가 많아, 한국에는 르노실험 말고 AMoRE실험(IBS지하실험연구단 김영덕 단장이 대표)이 있다. 하지만 AMoRE실험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행스러운 건 새로운 중성미자 실험이 모색되고 있다는 거다. 한국의 입자물리학자들과 천문학자 100명이 KNO(한국 중성미자 관측소)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35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학계가 구상한, 최초의 빅 사이언스 실험이다. 이 정도 규모는 한국에서 해본 적이 없다. 현재 이들은 정부의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KNO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 모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자기들끼리 모여 토론을 해왔고, 그 결과를 지난달 과학기술부에 제출했다. KNO가 어떻게 되는지를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유럽도 지켜보고 있다. 다야 베이 실험이 중국 기초과학을 도약시켰듯이, KNO는 한국 물리-천문학을 비상하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면 한국의 젊은 중성미자 연구자가 또다시 러시아 두브나로 상을 받으러 가게 된다. 두브나로 가는 길은, 노벨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2016년 브루노 폰테코르보 상 수상자들...왼쪽 두 번째가 김수봉 전 서울대 교수].



 
 
© Aju Business Daily & www.ajunews.com Copyright: All materials on this site may not be reproduced, distributed, transmitted, displayed, published or broadcast without the authorization from the Aju News Corporation.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