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배우자'와 공정거래, 그리고 SK-롯데

장승주 기자·변호사-성석우 인턴기자() | Posted : August 12, 2022, 14:11 | Updated : August 16, 2022, 07:25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설명하는 윤수현 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이른바 '선박왕'으로 불리는 해상 운송업계의 알짜 재벌 A회장이 있다. 그에게는 본부인 외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상의 결혼 생활을 유지 중인 '사실혼 배우자'가 여럿 있었다. 그녀들에게 막대한 생활비를 줘서 본부인은 물론 두 번째, 세 번째 등의 '사실혼 배우자'들과 사이 좋게 지냈다.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이 예고되면서, A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가 친족에 들어가게 됐다.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0일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재벌 총수의 친족 범위는 ‘혈족(친가) 6촌·인척(외처가) 4촌’에서 ‘혈족 4촌·인척 3촌’으로 축소된다. 현재 60개 집단 8938명인 총수의 친족은 4515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외에도 사외이사지배회사 규정과 중소벤처기업 계열 편입 유예 조건, 임원독립경영 거래 의존도 요건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이번 시행령 개정에서 주목받고 있는 특이점은 친생자가 있는 ‘사실혼 배우자’가 친족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 

재계는 규제가 줄어든 것은 환영할 일이나, 사실혼 배우자가 친족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정거래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사실혼 배우자에 대한 이슈’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당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고(故) 신격호 롯데 전 회장,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거론되는 가운데, 이 개정안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사진은 빈소로 향하는 최 회장(왼쪽)과 빈소의 노소영 관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SK그룹과 6공화국의 결합그러나

2015년 1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세계일보에 서신을 보내 ‘(자신은) 혼외자가 있고 부인 노소영 관장과 이혼하겠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최 회장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씨와 결혼했다. 둘은 미국 유학 당시 만나 연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대통령의 딸과 선경그룹(현 SK그룹) 최종현 회장 아들의 결혼은 세간의 화제였다. 이후 둘은 1남 2녀를 뒀다.

선경그룹이 1991년 제2이동통신 사업자에 선정되자 각종 의혹을 낳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가 크게 반발하자 최종현 회장은 일주일 만에 사업자 자격을 포기했다.

이러한 문제들과 별개로, 평탄한 결혼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진 둘이었기에 최 회장의 불륜 고백은 큰 논란이었다.

두 사람은 2015년 12월 이후 이혼절차를 밟고 있다. 최 회장은 이혼을 원했지만, 노 관장은 “혼외자식도 인정할 테니 집으로 돌아오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최 회장은 2017년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조정신청을 했다. 2020년 노 관장 또한 “지난 세월 동안 가정을 만들고 지키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반소를 청구했다.

둘은 1조원대 소송을 진행 중이다. 노 관장은 최 회장에게 위자료 3억원과 (주)SK 주식을 요구한 상태다. 이 액수를 모두 합치면 약 1조원이 된다.

한편 최 회장은 '사실혼 배우자'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동거 중이며 딸(2010년생)이 하나 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2019년 5월 공식 석상에서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과거에는 내가 공감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나와 아주 반대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돈이나 이런 것엔 전혀 관심도 없고, 오직 사람만을 향하는 사람이었다”며 김 이사장을 지칭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사실혼 배우자와 사이에 자녀 있어야 친족 인정

공정위는 대기업 총수의 사실혼 배우자도 슬하에 자녀가 있으면 동일인의 친족으로 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딸을 둔 SK 최태원 회장과 김희영 이사장 커플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희영 이사장 또한 ‘총수의 친족’으로 바뀐다. 총수 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할 경우 제재를 받는다. 친족 지정 시 김 이사장도 여기에 포함된다.

공정위는 “사실혼 배우자가 계열사의 주요 주주로서 동일인의 지배력을 보조해도 특수관계인에서 제외돼 규제 사각지대가 있었다”며 “상법이나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은 이미 사실혼 배우자를 친족 범위에 포함해서 규정하고 있다”고 이번 조치 이유를 밝혔다. 또 해외 주요 나라들도 사실혼 배우자를 특수관계인으로 본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대기업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특수관계인’이다. 동일인과 친족을 포함한 관련자가 보유한 지분이 합쳐서 30%가 넘거나, 관련자를 통해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회사를 계열사라고 한다.

이제부터 동일인의 친족으로 규정된 사실혼 배우자는 계열사 주식 보유 현황 등을 공시해야 하고 일감 몰아주기가 금지되는 등 많은 규정이 적용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사실혼 배우자 유무가 알려지지 않은 기업의 사례도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조치로 SK그룹 외에도 SM그룹 등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1일 보도에 따르면 SM그룹은 우오현 회장의 사실혼 배우자 김모씨가 새롭게 친족에 포함될 예정이다. 김씨는 SM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라와 우방산업 지분을 각각 12.31%, 삼라마이다스 자회사인 동아건설산업 지분을 5.68%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를 두고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총수 일가가 사실혼 배우자와 자녀의 존재를 숨기려 할 때는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가 2018년 10월 5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롯데 경영비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까지 갔던 故 신격호-서미경 케이스

공정거래법 시행령이 변경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고 신격호 롯데 회장과 사실혼 관계였던 서미경씨가 적용을 받는지로 모아졌다.

1980년대 고 신격호 롯데 회장은 미스롯데 출신 배우 서씨와의 사이에서 딸을 출산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신 회장은 노순화 부인 사망 후 일본인인 사게미쓰 하츠코를 둘째 부인으로 두고 신동주 회장, 신동빈 회장을 슬하에 뒀다.

이후 그는 서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어 딸을 낳았다. 당시 신 회장은 62세, 서씨는 24세였다.

1969년 서씨는 영화 '피도 눈물도 없다'로 데뷔했다. 1977년 미스롯데 출신으로 인기를 누리던 서씨는 1981년 드라마 '대명' 출연 후 연예계를 은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돌연 37세 연상 신 회장과 사실혼 관계라는 것이 알려졌다.

이후 2016년 서씨와 그녀의 딸 신유미씨 모녀가 총수 일가 가운데 한국-일본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확보한 자료를 통해 총수일가가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13.3%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중 서씨 모녀가 6.8%로 가장 많았다.

2017년 신 회장은 롯데시네마 영화관 매점 사업권을 서씨 등에게 몰아줘 롯데쇼핑에 770억원 규모의 손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2019년 대법원은 신 회장에게 징역 3년 벌금 30억원의 실형을 확정했다.

신 회장 측은 서씨 회사에 롯데홀딩스 지분을 넘긴 것에 대해 조세 회피 혐의로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신 회장 측은 종로세무서장이 부과한 2100여억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2심 법원 또한 1심과 마찬가지로 신 전 회장이 서씨의 회사에 롯데홀딩스 지분을 넘긴 것에 대해 조세 회피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서씨가 출석하는 재판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씨는 이번 개정안의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롯데그룹의 경우 신격호 회장은 이미 돌아가셨고 지금은 신동빈 회장이 동일인이라 서씨는 사실혼 배우자로서 신고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만약 신 전 회장이 살아있었다면, 그녀는 신 전 회장의 ‘친족’에 포함이 됐을 것이다.

한편, 외국인 총수 지정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공정위는 한국계 외국인이 지배하는 기업의 등장과 외국 국적이 있는 총수 2~3세 증가를 감안하면 외국인 총수 지정이 필요하다며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할 때 외교통상 마찰을 빚을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공정위에 전달, 일단 이번에는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미국 국적인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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